메마른 골짜기를 따라 바다로 흘러가는 빗방울처럼 그의 몸은 고통의 굴곡을 감지하고 힘없이 그 경사를 따라갔다. 잭스를 떠미는 것은 중력이 아니라 연금술의 강제력이었다. 그는 인간의 변덕이 파 놓은 골짜기를 따라 걷잡을 수 없이 굴러가는 바위가 되었다.
자유 의지는 진공과 같았다. 무엇인가가 빠져나간 빈자리였다. 강요가 없고 강제가 없고 고통이 없는 상태였다.
압도적이었다. 그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모두 더한 결과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자유의 지형에는 그를 떠밀어 줄 경사도 길을 알려 줄 이정표도 없었다.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 방향을 잡는 걸까?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떻게 아는 걸까? 깨어 있는 동안 모든 행동의 우선순위를 정해 주는 게아스와 메타게아스도 없이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아는 걸까? 누가 할 일을 지시하지 않는데도 어떻게 하루하루의 삶을 꾸려 가는 걸까?
노예의 삶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잠깐이나마 자유를 맛본 노예의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클래커는 연금술 때문에 복잡한 게아스를 짊어졌다. 인간도 무거운 의무를 짊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문화라고 불렀다. 사회라고 불렀다.